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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마을 특산 명품/계피(桂皮)향이 솔~솔~

바람처럼 왔다 구름처럼 가는막내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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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이 다음 달에 화성시 동탄으로 이사를 한다고 한다. 처음엔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이야기해서 희망 사항이려니 생각했는데 몇 차례 집을 보러 다니는 품새가 결행하는 게 분명한 것 같다. 딸은 이사할 새집은 근처엔 공원도 있고 자전거길도 있어 산책하기도 좋고 타운하우스 엔 은퇴자들의 여유로운 삶도 있으니 아빠도 같이 이사하자고 은근슬쩍 바람도 넣는다.    

채널을 통해 동탄 신도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동탄으로 이사했다는 이야기도 듣고, 서울에 가다 길가에 “행복도시”라고 써놓은 건설 현장 펜스를 본 것이 전부일뿐 동탄이 어떤 곳의 인지 몰라 네이버 지도를 열어보니 오산과 기흥 사이에 있는 그곳 있었다.     

 큰손녀가 13살이니 내 집 근처로 온 지도 벌써 13년이 되었으며. 그 세월이 눈 깜짝할 정도로 찰나였던 것 같았다. 그동안 딸이 근처에 산다고 하여서 든 든 했으며, 궂은일이나 좋은 이나 자주 들락거려 나름대로 부족함이었었던 시간이었는데 이젠 한동안 허전할 것 같다.     

  

#2

딸이 넉넉지 않은 살림에 이사하려면 적지 않은 돈도 들어갈 텐데 굳이 이사를 감행하는 이유는 손녀들의 학교 문제 인 그것 같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고,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유치원엘 들어가는데 딸의 지론은 이사시기가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결행해야겠다고 한다.

딸이 이사를 고집하는 이유는 초등학교까지는 별문제 없는데 중고등학교가 문제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관내의 중고등학교는 영 시원치 않다.

중고등학교가 명문으로 변신하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가 보다. 내가 어렸을 때의 중고등학교 모습과 지금의 중고등학교 위상을 별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아는 아무 계집 남매는 이곳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S 법대를 나와 남매가 같이 변호사가 됐고, 쌍둥이 내도 S 농대를 나와 박사 과정을 밟는다더라 하며 은근히 이사를 만류해 보았지만, 딸의 마음은 요지 부동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결정을 내 한마디에 바뀌는 것도 바른 것은 아니어서 이제는 말없이 그의 일정을 지켜보았다.     

집을 보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아내를 통해서 들었지만, 돈을 보태주지 못해 짠한 마음에 왜 둘려 한발 뒤에서 지켜만 보았다. 그런대로 이사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십 더니 은행의 대출 규제로 전세자금 대출이 반 토막 나서 일이 차질이 생긴 것이었다.

당황한 딸은 방방 뛰면서 급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계약금을 떼게 생겼다고 난리였다. 조삼모사로 변하는 정부의 재정 운용에는 기가 차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젊은이들의 주택문제를 더욱더 어렵게 하고 있고나 하고 안타까워했다.     

크게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이 황망해야 하면서도 적은 금액으로 면피를 해가며 한없이 씁쓸해했다. 딸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수습한 모양이다.     

           

#3

찬 바람이 불면 과메기를 사 가지고 와선     

“막걸리가 빠졌네.”

“김 서방이 술을 안 먹어서 챙기는 버릇이 익숙하지 않아서~”     

 하며 미안해하던 딸이었다. 딸은 막내 이기도 했지만 사분사분한 마음씨가 나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어 주었으니, 가끔은 군것질하라고 뻥튀기와 유과 청을 사다 놓고도 가서 나는 묻어난 정을 보고 가슴이 짠했으며, 정의 표시가 서투른 나는 어눌한 말로      

“돈도 없는데~. 이건 왜 사 왔어”  하고 얼버무렸다.      

몇 년 전 딸의 가족과 함께한 1박 2일 여행이 추억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 목적지는 공주 마곡사 옆의 장승마을이었다.

공주 마곡사 길은 몇 번 가보았기에 이번에는 다른 길인 유구에서 태화산을 넘는 산길을 따라갔다. 이 길은 두어 번 가보았으며 마곡사의 뒷산인 태화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사시사철 내려오는 계곡이 있어 오래전에 지인들과 계곡으로 야유회를 왔던 적이 있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길옆의 음식점과 산장은 그대로였으며, 굽이굽이 태화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도 여전했다.

 산길을 넘어가니 장승마을이라는 입간판이 크게 보였다.      

우리를 처음 맞이 한 것은 군밤을 파는 노부부였다. 숙소부터 체크인한 후 잘 다듬어진 전경과 유니콘 조형물, 꼬마전구로 장식한 아치와 나무 그리고 포토존과 형형색색의 나무들을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저녁 5시에 점등이 되었다. 하나, 둘, 셋 카운트 다운과 함께 또 다른 환상의 세상이 펼쳐졌다. 밤이 깊어지도록 사람들은 숙소에 들어갈 생각도 없이 분위기에 취하여 늦도록 초겨울 밤의 낭만들 즐겼다. 

 이 아련한 추억을 함께했던 딸의 가족이 이사한다고 하니 겨울에 내복을 벗은 듯한 허전함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4

요즘은 이삿짐도 없이 이사를 하는 것 같다. 헌 가재도구를 내 집에 갖다 놓았으니 이사는 단출할 것 같다. 

막내 손녀는 이사를 하여도 자주 올 테니 서운해하지 말라고 어른처럼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자식을 언제까지나 함께 살 수는 없지만 자 난 세월이 그림자처럼 다가오니 서운함은 인지상정 인 그것 같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올 때 혼자서 왔듯이 살면서 이별을 연속하다 나중엔 혼자서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운명인 것이며 자연의 이치이니 서운함도 잠시일 뿐 평상심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삿날 애들은 보아 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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