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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게 말했네 "인생의 대차대조표는 빵원"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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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항상 시간을 지키지 않아 내가 먼저 채근해 주었다. 멀리서 가로등에 비친 긴 그림자와 함께 그가 서서히 다가왔으며 우리는 별 말없이 페달을 밟아 늘 다니던 자전거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운정양수장 에서 부터 남원교 까지 전 속력으로 달렸으며, 남원교 위에서 숨 고르기를 하였다.  

 

 

그는 평소에 술을 즐겨하지 않았으며 내가 권하면 소주병 뚜껑을 주걱처럼 만들어 잔으로 받았고, 나는 핀잔과 함께 뚜껑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런 그가 새벽 자전거를 탄다고 한다. 평소에 쌀동아 같이 활기차고 말도 잘하던 그가 말도 별로 없고 더구나 새벽 이불을 박차고 자전거를 탄다고 하니, 나는 그에게 별종 이라 면박을 주었었다.  

어느날 내 손을 자기 장딴지에 언져놓고 근육량이 많아 졌다고 자랑하며 자전거를 탄 덕분 이라고 자전거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리곤 자전거를 혼자 타니 별로라고 하며 은근히 같이 하자고 권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폐암 말기 였다. 

나는 그에게 해 줄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위로 한답시고 상투적인 빈말를 내던지기는 싫어 “내일부터 나도 자전거를 탈게” 하고 약속을 했다. 

 

 

그날부터 새벽 5시에 우리는 삽교천 서커스장앞 광장에서 만나 소들쉼터까지 갔다 왔다. 내가 서커스장앞 광장 가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으며, 처음엔 아내도 어리둥절 했고 “그냥 운동하는 거야” 라고 적당히 외둘렸다. 이렇게 하기를 한 달, 하루도 거르지 않았으며, 우리는 소들쉼터에서 삽교천 물비늘이 어른거리는 여명을 보며 무언의 대화를 했다.  

주말이면 밤낚시하는 태공들이 즐비했고, 갈대숲에서 푸드득거리는 오리도 만나고, 새벽하늘을 까맣게 덮는 가창오리떼도 보았고, 날마다 남원교 다리 근처에서 꼭 만나던 걷기 부부도 만났다.

 

  

소들 쉼터에서 주워온 프라스틱 부표가 뒤웅박처럼 지금도 내집 앞 나무에 매달려 있다. 그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자전거로 금강 종주를 하는거야, 그리고 후에 시니어 사이클 대회에도 나가자”  

그 후 나는 공주에서 부여까지 자전거길를 조사 했고 세부적인 계획도 세웠다. 계획서를 본 그는 흡족해 했고 가족들의 허락도 받았으니  그동안 체력을 보강 해야 한다고하며 열심히 운동도 했다. 이를 알아채린 다른 친구들은 “ 환자를 데리고 어딜 갈려고 하느냐구” 극구 반대해서 고심하다 그에게 넌지시 “요즘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금강종주는 그만 두자고 말했고  그도 수긍 해 주었다 

 

 

그도 여명이 얼마 남지않은 것을 알았는지 그의 요구로 우리는 부부동반 점심을 겸한 나들이 했다. 점심식사 후 정토사에 들렸을때 사후 절에 위폐를 모시는 내용을 심각하게 물었다.   

요양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임종 전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친구들의 마지막 모습을 가끔 보아 왔지만 지난날 자전거를 타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주마등같이 되살아 나는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자전거 길의 파노라마 같이 스처 지나가는 순간임을 절감 했다.  

그의 장례날은 날씨가 청명했다. 그가 누울 광중의 토색은 선홍색으로 깨끗했으며 산역 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했다. 평소 그가 닦은 공덕 때문 일 것 이다.   

구름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그 친구는 알려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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