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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갈대 같은 내 맘은 끝이 어딘가. 또 하나의 행복 장터가 나의 거래처로 편입되었다. 영성이 가득하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문 후 벽화가 눈에 띄게 보이고 고즈넉한 건물들이 조화롭게 들어선 솔뫼 성지에 행복 장터가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D팀장이 오더 주신 목록을 점검하며 첫 거래에서 실수가 없게 부속서류들을 챙겼다. 나는 버릇처럼 약간 긴장하곤 수량을 점검하면서 “ 각각 5세트 개로 할까요~ 3개로 해 주세요” 하며 선뜻 내키지 않아 했던 팀장님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의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주저주저하는 그녀의 모습이 못내 어른거리었다. “인터넷 검색도 해 보지 않나? 하며 구시렁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곤 픽하니 웃었다. 실은 네이버에서 내가 한동안 블로그에 열심히 포스팅 한 덕분에 올리고마을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 있었고.. 더보기
합덕을 부흥시킬 마지막 자존심 합덕성당 어릴적 합덕성당에 대한 기억은 천주교 신자인 친구를 따라 합덕 성당엘 갔다가 표정도 없고 말도 없는 외국인 신부를 본후 공포에 질려 성당 근처를 얼씬도 않 했던 일이 있었다. 작달막하고 약간 뚱보안 서양 신부 는 눈이 파랗고 수염은 양 옆으로 꼬아 올렸으며 그때 본 사제복은 피에로 같았던 것 같다. 촌부만 보아왔던 어린 나는 무서움 밖에 기억이 나질 않았으니 아마 조선 말기에 서양인을 양이라고 하며 도깨비 처럼 신기하게 보였던 민중의 시각 그대로였던 것 같았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신촌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중이시던 부친께서는 눈오는 어느날 내 손을 잡고 20리도 넘는 합덕장엘 가서 중국집의 찐빵을 사 주셨다. 중국말을 하는 중국집 주인도 신기했지만 오가면서 본 거대한 산같이 크게만 보였던 .. 더보기
혼불처럼 살다가 홀연히 하느님 곁에 가신 사제 김대건 새남터의 모래가 막난이의 칼춤으로 피물을 들일 때 25세의 젊은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을 믿은 것도 죄냐" 고 외척을 것이다. 머리는 효수되어 저잣거리에 매달리고 시신이 미리내에 묻힐 때도 "하나님의 뜻대로 했노라고" 고백하였을 것이다. 오늘은 혼불처럼 살다가 홀연히 하느님 곁에 가신 사제 김대건 신부를 만나러 솔뫼성지에 갔다, 솔뫼성지는 소들 강문 끝자락의 구릉지에 위치해 있다. 소들 강문은 강문리의 넓디넓은 논에 모내기철 써레질하는 소들이 끝었이 어이 진다는 말에서 유래하였으며, 김대건 신부의 조상들도 소들 강문 어딘가 에서 논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그는 천주교가 조선에서 태동하는 시기인 1821년에 솔뫼에서 출생하였으니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사옥(1832년) 사이의 동장군보다 더 엄혹..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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