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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관광

분이(糞伊)의 가슴속에 감추어진 금동비로자나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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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에는 적지 않은 문화재들이 산재하고 있으며, 각각의 사연을 간직하고 오랜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당진 면천의 성하리에 있는 영탑사에는 삐쩍 마른 꺽장다리 처럼 훌쭉 하게 생겼지만, 탑의 이름으로 사찰 이름이 지워졌으니 이 탑이 영탑사의 영탑 이다.

 

대부분 사찰 에서는 대웅전 앞에 사찰의 상징인 탑이 서 있는 것이 보통인데 뚝 떨어진 유리광전 뒷산 암반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 했다.

 

 

 

 

영탑사에는 흥선대원군이 남연군의 묘를 이장 하가 위해 불을 질렀다는 가야사의 범종이 있으니, 남연군묘 이장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생각이 된다.

 

18463월에 남연군은 심복인 천가, 하가, 장가, 안가를 시켜 스님들을 내쫓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불울 지르려면 필경 백주 대낮에 지를 일은 없었을 것이고, 야밤에 일을 저질렀을 것이니 절의 스님들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3월의 밤은 아직도 춥고 매서운 날씨이다.

가야사에는 범종도 중요하지만 더 귀한 보물도 있을법하다.

정조 22년에 만들어 졌다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도 혹시 가야사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을 범종과 함께 가져오지 안 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기습방화로 스님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갔고, 누군가에 의해 거리는 가깝지만, 산이 막힌 개심사로 피 할 수 없어서 영탑사로 피신했을 것 이라고 추론해 본다.

 

당시 조선 사회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교가 많이 쇠락 하였지만, 가야사는 비교적 큰 절 이어서 사사 노비로 돌쇠와 그의 딸 분이냐 기거해 왔다고 설정해 보았다.

 

환갑이 넘은 돌쇠는 13살의 딸 분이와 마구간 옆 작은 봉놋방에서 고단한 몸을 추스르며 잠을 청하는데 봉창 밖이 훤하고 장대 같은 사내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밖이 이상해요. 절이 불이 났나 봐요

 

하며 분이가 봉창을 열어보니 이미 대웅전에는 불꽃이 넘실거리더니 서까래가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돌쇠는 분의 손을 잡고 대웅전으로 뛰어가 분이에겐

금동비로자나불좌상 안겨주고 자신은 범종을 않고 뛰었다.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은 평소에 분이가 가장 좋아했던 불상으로 50cm 정도의 크기 이어서 분이의 품에 안기기에 적당했으며, 범종은 60세의 노인인 돌쇠에겐 약간 버겁지만 은은한 종소리가 노비의 면천을 예언해 주는 것 같아 항상 가까이 하고 싶던 바로 그 범종이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돌쇠와 분은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짚신도 벗겨지고 봉두난발과 옷고름도 풀어졌으며 치맛단도 찢어져 산 귀신 같은 모습이었다.

 

“”아버지 어디로 간대요.

 

하고 묻는 분의 말을 못 들렸는지 가야산 옥양봉과 사원산 사이의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가야사의 노비 이다보니 이곳의 지리는 이골 났지만 분이를 데리고 범종을 안고 가는 돌쇠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칠흑 같은 어둠에 분이는 돌부리에 수도 없이 넘어졌고, 한기가 엄습해와 오들오들 떠는 딸아이가 애처로워 돌쇠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영탑사로 가는 길이다.

아버지 그곳에는 아는 사람 있어

한내장에서 자주 만났단 떡칠이란 놈이 영탑사에 있거든.”

새벽쯤 이면 도착 할 거야.”

 

가야사의 불타는 모습도 보이질 않고, 잠자던 산새들이 놀랐는지 후드득 놀라 나르며, 흐르던 물소리도 산비탈로 접어 들으며 들리질 않는다.

 

돌쇠는 보이지 않는 산길을 냄새로 맞아 가며 가는지 연신 쿵쿵 거리며 걸었고, 분이는 길을 잃을까 무서워 돌쇠를 바짝 쫓아갔다.

수침봉에 가까워 오니 산은 더욱더 가파랏다.

 

아버지 더는 못 가겠소

애야, 이 봉우리만 넘으면 원평리다. 아주 평탄하고 돌도 없으니 조금만 참자하며 애원한다.

 

수창봉을 돌아서니 평상과 같은 평편한 바위가 있었다.

돌쇠는 관솔을 모아 부싯돌로 불을 붙이니 따뜻한 온기가 퍼져 온다.

불빛이 비췬 분이의 발등에서는 선혈이 엉켜 있었다.

 

두꺼비 등가죽 같던 돌쇠의 발도 이리저리 깨 젖으며, 여리디. 여린 분의 발은 퉁퉁 붓고 피로 엉켜져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돌쇠는 분의 치마를 쭉 찢어 발을 감아주곤 범종을 머리에 쓰고 분이를 업고 걸었다.

원형을 지나니 평평한 들판이 계속되었으며, 고산을 지나 성하리의 영탑사를 바라보니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탑사의 영탑 용두에 있는 야광주가 이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려고 빛을 발했던가 보다.

먼동이 틀 때쯤 영탑사 대웅전 마당에서 털썩 주저앉은 돌쇠 부녀는 범종과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이 무사한 것을 보곤 잠이 들어버렸다

 

상왕산을 비취던 아침 햇살이 부녀에게 따뜻하게 비추어 준다.

이렇게 하여 영탑사의 영탑과 가야사의 범종과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이 영탑사의 보물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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