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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손녀에게

부자 되는 지름길은 화식열전의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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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내가 화식열전을 주목하게 된 이유                                                                                                                                        2. 사마천은 누구 인가?                                                                                                                                                            3. 화식열전이 현대 사회에서 각광을 받는 이유                                                                                                                      4. 회식열전은 은  2,000년 전에 살았던 부자의 기록

나는 긴 시름의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기분으로  "화식열전"을 읽은 후 인생에 대해 다시 성찰하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인위적인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어떤 자연의 정교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알아낸 자연의 정교한 법칙을 나의 사랑하는 손녀에게도 알려 주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 되기를 원 하지만 청빈이 지고지순한 가치인양 호도 하는 얼빠진 사람들도 있다.

TV에서 본 청문회 장은 검은돈을 가려내는 취지 가난뱅이가 자랑 호기롭게 뻘쭉 댄다. 화식열전의 부자들은 하늘에 부끄러운 점 없는 부자들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2,000년 전 부자들의 사고방식과 경제논리가 현대인을 능가한데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골병든 것은 2차 대전 후 집권 후부터였다,

사마천이 위대했던 것은 우리가 미루어 짐작했던 고대인들은 미개했고 비천했으며 문명 사회인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야만 시대라는 생각을 깡그리 무너 트리고 그들의 진면목을 보여 준 것이었다. 그들은 야만인이 아니고 우리가 염원하는 부자 들이다. 그들은 현대 사회에서 도덕과 윤리에 어긋남 없이 경제 원리에 입각 헤서 부를 이룩하였으며 후대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1. 사마천은 누구 인가?

   1-1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기원전 86)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이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기원전 86)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 이다. 산시성 용문(龍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사마담의 관직을 물려받아 태사령(太史令)으로 복무하였다. 다른 이름으로는 태사공(太史公)이라고 불리가도 했다.                   기원전 99년 무제의 명으로 흉노정벌을 떠나 이릉 장군이 패하고 포로 된 사건이 있었다. 진로 한 무제는 이릉의 처분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중신 회의를 열었다. 신하들 모두는 이릉을 비난하고 능지처참을 주장했으나 , 사마천 만이 충절과 용맹을 찬양하고 두둔했기에 무제의 노염을 사게 되었다,

1-2  목숨을 걸고 쓴 "사기"가 최고의 역사서로 그에게 보담

황제의 노염을 산 사마천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사형을 면 하려면 거액의 벌금을 내거나 궁형(남자의 생식기를 떼어내는 치욕적안 형벌)을 받아요 했으며, 사마천은 궁형으로 죽음을 모면한 후 아비지 때부터 편찬 중인 역사서 " 사기"를 완료하였다. 그가 중국 최초의 임금인 황제(黃帝)에서 무제에 이르는 역사를 인물별 로쓴 130권의 형식으로 쓴 역사서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화식열전은 사기의 마지막 장에 수록되어 있다.

2. 내가 화식열전을 주목하게 된 이유 

  2-1 화식열전은 가장 마지막 장에 나오는 챕터

화식열전은  사마천의 "사기" 중에서 기장 마지막 장에 나오는  챕터이다. 우리가   화식열전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귀한 것은 아꼈다가 마지막에 내놓듯이 사마천도 인류의 보물인  사기에서도 가장백미  인  화식열전을 앤 뒷장으로 장식한 것이었다. 사마천이 정말 내놓기 싫어 망설이다 마지막으로 풀어낸 것 같은 그의 진수임을 알 수 있다.

회식열전은 돈을 많이 벌어 세상을 이롭게 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쓴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었다."무위무관(無位無冠)의 백성으로서 정치를 어지럽히지도 않고 남의 생활을 방해하지도 않고 때맞추어 거래해서 새산을 늘려 부호(富豪)가 되었다. 지혜로운 사람도 여기서는 얻는 바라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69에 `화식열전` 을 서술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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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내가 화식열전을 주목하게 된 이유

내가 한동안 향교에 전념했던 적이 있었다. 전부터 유학자였던 조부의 영향도 있었지만 나의 성품은 야 하지 않고 온화했기에 유학은 자신과 궁합이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젊은 축에 속했던 나는  전교의 마음에 들어 장래의 재목으로 촉망받으며, 여러 직분도 맡으며 열심히 일 했었다. 맞으면서 초등학교에서 방학 때 혹은 방과 후 수업에 예절 교육도 시켰고 방문자들에게 향교의 역사와 유학의 의미 그리고 현시대애서 향교의 역할도 설명해 주었다. 


나는 스스로 공부하고, 매주 서울의 성균관 석전교육원에 다니면서 제향에 대한 공부를 하여  석전의례사 자격증도 취득했으며, 향교에서 가장 중요한 제향 절차를 주관하는 중책도 맡았었다. 그가 배운 정통의례와 답습해 오던 기존 의례와의 충돌은 나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어느 정도 수습이 되다. 하지만  향후 전교 문제는 그에게는 재앙이었다.  회원 중에서 지금의 전교를 조선시대의 전교로 보는 시대착오적인 인사가 모든 판을 뒤집어 놓은 것이며, 기울어 가는 향교를 나는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의욕도 이미 사라져 버렸을 때였다.

 

   2- 3  나를 실망시킨 것은 여전한 구태의연한 유학 본연의 모습이었다.


특히 나를 실망시킨 것은 여전한 구태의연한 유학 본연의 모습이었다. 유학의 근본 이념인 인의(仁義)는 치자의 덕목이며, 당장 먹고살 것이 없어서 여기저기에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허울 좋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쟁기 보습이 필요했고, 어망이 필요했으며, 사냥에 쓸 화살촉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장 온 가족이 굻어 죽는 판에 인의 (仁義)를 가리킨다고 하니 유학은 시대에 너무 뒤진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3. 화식열전이 현대 사회에서 각광을 받는 이유

 

3-1 중국인들은 관운장과 백규를 재물의 신으로 추앙한다고 한다.

관운장이 재물을 지켜주는 신이라면 백규는 재물을 불러 모으는 신이다. 백규가 활동하던 시기는 전국시대 초기였으며,   경제사상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었다. 사마천도  그의 농업 사상을  높이 평가했다고 하며   `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경제 활동의 기본 원리를 잘 지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이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이며 , 그의 이론은 이후 각 왕조의 시장교역과 물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백규는 4가지 원칙만 지키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 -. 다른 사람이 없는 새 로운 제품으로   제품을 내놔야 한다.                                                                                                   둘째- 상대가 동일한 제품을 내놓는다면 먼저 선을 보여야 한다.                                                                                                 셋째 - 상대방의 신제품 보다 더 새로운 재품으로  출시를 한다.                                                                                                   넷째- 앞서 3가지 조건에서도 경쟁 업체에 쫓긴다면 제품의 원기를 낮춰 가격우위를 점해야 한다.

3-2 정말 놀라운 이야기이다.

현대의 경제학에서도 쉽게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2,000년 전에  설 했다 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백규는 시장 경쟁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경제 활동에 접근했지만 사업에서 작은 이익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삐뚤어진 논리와 얄팍한 꾀로 의롭지 못한 재물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또 각종 상품이 서로 교환되고 유통되면서 서로 발전하도록 돕고, 무역과 물물교환을 경제와 생산성 향상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게 했다. 풍년이 들어 곡식값이 떨어지면 그것을 대량으로 사 들이는 대신 농가에서 필요한 농가에서 필요한 실이나 옷을 내다 팔아 그들의 수요에 부응했다. 흉년이 들어 곡식이 모자라면 곡식을 내다 팔아 내다 팔았다.

3-3 사마천은 백규의 경영철학을 다음과 같아 요약했다.

" 백규는 돈을 늘리기 위해 값싼 곡식을 사 들였고, 곡식을 늘리기 위해서는  상품(上品)의 종자를 사 들였다. 가장 소박한 음식을 먹었으며, 소비향락 욕구를 억제하고 의복도 절약하면서 일할 때는 노예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진정한 `상도` 가 무엇인지 알려 주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백규의 경제사상을 심대하다. 백규는 자신의 경영법을 아무 에게나 가루처 주지 않았다. 학문적 경지에 까지 이른 그의 사상은 쉽사리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많은 고관이나 권력자 들은 백규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오늘날 경영자 들도 그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3--4 사마천은 백규의 경영철학을 다음과 같아 요약했다.

그는 자신의 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의 경영은 마치 이윤과 여상(강태공)이 계책을 꾀하고, 손자와 오자가 군대를 부리고, 상앙이 변법개혁을 시행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임기응변하는 지혜가 없거나, 일을 결단할 수 있는 용기가 없거나, 미덕이 없거나, 지켜야 할 강단이 없는 사람은 내 방법을 배울 싶어도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경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은 보편화 되었 이지만 백규가 살던 시대에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백규는 경제가 정치나 군사만큼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태사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신농씨 이전의 일에 관해서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의 사람들의 눈과 귀가 좋은 소리를 바라고 입은 고기 맛을  바라며, 일신은 편안함과 쾌락을 바라고, 마음은 자신의 세력과 능력으로 얻은 영화로움을 자랑스러워하고 싶어 하니 이러한 풍속이 백성들에게 물든 지 오래되었다. 아무리 가가호호 다니며 눈 가리고 열심히 논 하여도 결국 교화는  불가능한 것이다. "

 이미 2,000년 전에 설파한 태사공의 말이 현재의 우리 음성으로 생생하게 들려주는 말을 들은 후나는 그 향교와 절연했고 방황하던 터에이천 년 전의 화식열전은 지금의 나를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4. 화식열전은 2,000년 전에 살았던 부자들의 기록

   4-1 전국 시대의  거상들은 날로 팽창하는 자본을 바탕으로

전국 시대의  거상들은 날로 팽창하는 자본을 바탕으로 상품 유통에서 생산에 이르는 상업경제 전반에 진출했다. 소금과  철, 농엽과 농업 부산물 무역, 각지의 특산물 운반, 보석등 고가 사치품 매매에서 화폐주조, 고리대금업등 이익이 나는 굿 이라먼 상업 자본가들은 어디든지 손을 뻗혔다. 사마찬이 소개하는 31명의 거상들은 춘추 후기에서 전국에 이르는 동안 천하의 경제는 큰 변화를 꺾었다.

그 주된 변화상은  상업자본과  인물이 모두 6명이다.  거상의 출현으로 요약된다. 사마찬은 "화식열전"에서 이런 거대한 흐름과 변화를 춘추에서 한나라 초기까지의 거성 30여 명이 보여준 치부법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사마천이 소개하고  있는 31명의 거상들 중 춘추시대의 인물은 모두 6명이다. 이들 중 계연, 범려, 백규, 자공은 앞에서 소개했다 시 모두 비슷한 시기의 거상들이다. 사마천은 이들 거상의 치부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4-2 거상의 치부법

" 위의 사람들은 부호 중에서도 부호 중에서 매우 두드러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벼슬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고 교묘한 수단으로 법률을  이용하여 나쁜 짖을 하여 부자가 된 것도 아나다. 그들은 모두 사물의 이치를 추측하여 거취를 결정한 것으로 시운에 순응하여  이익을 얻고 상업을 하여 재물을 얻고 농업에 힘써 재산을 지켰다. 그들은 무의 방법으로 모은 것을 문의 방법으로 재산을 지킨 것이다" 라며

"부자가 되는 것 에는 정해진 직업이 없고  , 재물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는 것이다. 재능이 있는 자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못난 사람에게 서는 기왓장 흩어지듯이 재물이 흩어져 버린다. 찬금의 부자는 한 도시의 군주와 맞 먹고수만ㄴ금 모은 자는 왕처럼 즐겼다."

"농업이 부진하면 먹을 것이 모자라고, 공업이 부진하면 상품사용이  모자라며, 상업이 침체하면 먹을 것 재료, 제품의 유통이 끊어지고 농작물 담당자의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면 기본자재가 적어진다 기본자재가 적어지면 산과 못이 개발되지 않는다."

4-2 양식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양식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 아 넉넉해야 자랑스러움 울 군자도 알고, 부끄러움을 안다. 예절은 경제적 여유에서 생기고 그 여유가 없으면 예절은 버림받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부유해야 덕을 행하고, 소인도 부유해야 있는 힘을 다해 일한다. 연못이 깊어야 물고기가 나고, 산이 깊어요 짐승이 왕래하며, 사람은 부유해야 인의가 따른다"

라고 말 했다. 청빈함이 지고지순한 가치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청빈은 무능함과 나태함을 포장하기 위한 수식어 일뿐 이다. 전 세계애 흩어져 있는 알 부자인 화교들은 사마천의 후예답게 "화식열전"을 계명처럼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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