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문구현의 건강 칼럼/숲 체헙

단호박식혜를 먹으며 깊어가는 겨울의 정취를 명심보감과 함께 점점 더 겨울이 깊어만 갑니다.모래가 동지이니 추위야 멀었지만, 절기상으로는 가장 깊은 겨울인 셈 이지요. 단호박식혜를 먹으며 깊어가는 겨울의 정취를 명심보감과 함께 하는 호사를 누리었답니다.그리고 오랜만에 아랫목에서 뒹굴뒹굴 하며 사치스러운 상념에 잠겨 보았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며,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해수면이 상승해서 해안의 도시가 물에 잠긴다고 엉뚱한 걱정들을 했었죠.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며 농업의 구조가 바뀐다고 이야기했었고요. 소나무가 점점 사라지고 활엽수가 우리의 산야를 덮는다고도 했었죠? 대 자연은 우리들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군요 " 웃기지 마라. 어쩌고 어째? 이번 겨울 꽁꽁 얼려서 매운맛을 보여 주겠다" 하고~ 세상은 그렇게 바뀌는 게 아닌가 봅.. 더보기
고택에서의 하루밤/ 우당고택 http://mkh4707.blog.me/150133426794 오래전부터 꿈꿔 왔던 고택 에서의 하루밤 이었습니다. 더더구나 맘 맞고, 귀하고 귀한 사람들과 살을 맛대며 하룻밤을 같이 하였으니 환상 이었죠. 많이 보수 하여 고택의 고색창연한 맛과 멋은 덜 하였지만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수 있었답니다. 인근의 맹사성고택과 추사김정희 고택을 둘러보며 옛스러움과 우리 고유의 건축미를 볼수는 있었지만 따뜻한 방바닥에 허리를 지져가며 온기를 느낄수는 없었는데, 이곳 우당고택에서 한껏 호사를 하였답니다. 돌담의 분위가가 우선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 이었습니다. 하나 하나 쌓아 올린 돌담위로 넝쿨식물이 울쌓여 감아 올랐던 흔적이 세월을 이야기 해 주는 군요. 고택의 지붕선은 예외 없이 아름답군요. 멀리서 보이는 뒷산.. 더보기
살아있는 천년을 뒷전에 둔 면천읍성 복원 당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면천읍성의 복원계획으로는 남, 북, 동문 복원과 객사, 동헌, 내아, 외책실, 사령청등 면천면사무소와 면천초등학교에 있는 관아건물 일부 복원과 성곽 총1,336m중 정비된 40m를 제외한 성벽 5.6m 여장1.4m 를 복원 축조 하며, 성문은 옹성25.4m에 2층 문루의 홍예문으로 석성및 여장으로 복원 한다는 것 이다. 이에 더하여 안샘, 군자정, 건곤일초정및 기존민가를 정비하고, 초가를 재현하여 이를 전통숙박시설 또는 체험장, 토산품홍보판매점으로 활용 한다는 것 이다. 조감도를 보면 아담한 읍성이 될 것 같다. 볼거리가 없는 당진으로서는 새로운 볼거리를 만드는데 의의가 있을듣 싶다. 그런데 아쉽게도 면천읍성복원에 대해 고증으로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성돌에.. 더보기
다산(茶山)의 향기를 그리워 하며 문구현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말수가 적어야 보기가 좋다. 말은 책임을 저야 하고 책임은 세상에 대한 빚이다. 법정스님은 말의 빚을 이승에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하며 생전의 말빚인 그의 저술을 그가 떠난 후엔 더 이상 출간 하지 말라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유언 하였다. 하지만 말빚 중에는 가슴에 와 닿는 향기 가득한 말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말 이다. 감히 율곡이이나 퇴계이황의 앞의 반열에 내 세우고 싶은 다산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스승 이시다. 월맹의 호지명은 항상 다산의 어록을 옆에 놓고 수신(修身)을 했다고 한다. 김일성이 호지명을 방문 하였을 때 호지명은 김일성에게 당신의 나라에는 다산과 같은 훌륭한 사상이 있는데 왜 구태여 사회주의를 따르느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진다. 다산의 어록중 “존불.. 더보기
기어이 터지고 만 농촌 대란(大亂) 문구현 지난 11월 24일 당진문화원에서 주최하고 올리고마을에서 진행한 2009년 특성화사업 ‘내 고장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부들과 마을안길을 걸었다. 길가에 널프러진 무밭과 배추밭을 보고 아연실색 , 아무말도 없이 묵묵히 걷고만 있었다. 가벼운 탄식과 함께 농부들의 아린 가슴이 자신의 아픔처럼 느껴지는 모양 이다. 주부 한 분이 말한다. “농협은 무엇 하는가? 어떻게든 팔아줘야 하지~” 같이 걷던 다른 주부가 말 한다. “ 말이 농협이지 장삿꾼과 매 한가지 인기라 ” 다른 때 같으면 한없이 즐겁기만 하던 농촌 마을안길 걷던 모습과는 달리 모두가 침통한 모습으로 걸었다. 이 지역은 봄에는 감자농사, 그리고 가을엔 무 농사, 논의 벼농사를 해 왔으며 소득 면에서 그런대로 바쳐주어 그럭저럭 지냈었다. ..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