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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마을/힐링을 찿아서

평생 쌓은 탑이 이젠 나라의 보물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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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늦가을 기구한 삶을 살다간 한 사람을 만나러 진안의 마이산으로 갔었다. 그의 행적이 너무 특이 해서 이래도 되는가 싶어 납 덩어리 같은 가슴을 안고 마이산에 도착 한 것은 오후가 지난 짧은 가을 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는 때 이었다.

 

 

 

창원에도 돌탑이 있고, 구미의 금오산에도 돌탑이 있다고 한다 파주의 감악산 에도 돌탑이 있고, 지리산 자락 에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왜 돌탑을 쌓느냐고 물어 본다면 정작 당사자는 이유를 잘 말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고사도 지나고 굿도 하던 성황당이 있었으며, 그곳을 지날 때면 멀리부터 돌을 주어다가 모아 놓거나 쌓았다.  물론 이유도 알지 못 하고 다른 사람이 하니 따라 했을 뿐 이었다.

그런대 알고 보니 적지 않은 곳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탑을 쌓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사람들은 왜 탑을 쌓을까>

마이신의 돌탑을 쌓은 사람은 임실 출신의 이갑용 처사 라고 한다. 이갑용 처사는 부친상 시묘 후 삶음의 무상함을 느꼈던지 6년간 전국을 방황하며 유량 하다 26살에 마니산으로 들어와 97살 까지 살면서 오로지 탑만 쌓았다고 한다. 탑의 형태는 외줄로 쌓아 올린 외줄 탑과 기단 부를 만들고 그 위에 외줄 탑을 쌓은 행태로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108개의 탑이 있었으나 지금은 80개가 남아 있으며, 관광객들에게 조심을 부탁하는 안내판이 곳곳에 있었다. 태풍에도 끄덕 없었던 탑이 사람에 의해 훼손 되었다고 하니 이갑용 처사의 정성에 누가 되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평생을 맨손으로 돌을 만지고 다듬은 그의 손을 그의 석상을 뭉뚝하고 뚜 박하며 말없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표현 하고 있었다.

한 여인이 향불 울 피우곤 그의 석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돌과 함께 평생을 수행 하던 이갑용 처사의 영험 함을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의 사찰은 산신각을 뒤쪽에 조그맣게 모시는 것이 보통 이었는데 이곳 탑사의 신선각은 본찰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가고 있었다.

 

 

범인의 힘으로는 불가능 할 것 같은 일을 한 이갑용처사는 우리가 모르는 신령스러운 기운의 힘을 입어 탑을 쌓은 것으로 믿어지며, 그에게 그토록 간절했던 것이   무엇 이었는지 궁금 했다.

60세부터 틈틈이 글을 써서 30여권의 책을 남기었으며, 랍사에 2권이 남아 있고 대부분은 분실 되었다고 한다.

글자를 배운 적이 없는 이갑용처사가 30권의 책을 저술한 것 은 놀라운 일 이지만 이 책은 누구도 해독 할 수 없는 신서(神書)라고 한다. 황석 공 신서, 또는 제갈량 신서리는 말을 들어 신비스러운 책 이라는 짐작이 든다.

 

세상은 넓고 기인이 나오는 것 있을 수 있는 일 이겠지만 이갑용처사의 삶이 우리에게 시사 하는 것이 무엇 이었는가를 상고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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