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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의 스마트 세상 이야기/문구현의 전자책

나는 어디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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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찜통더위에 모두가 지쳐 버렸는데 한줄기의 비가 퍼부었다.

 

 급시우(及時雨) 말을 이런 때 쓰는 것이다.

풀잎은 생기를 찾았고 벽화 속의 기린이 당장 거리로 튀처 나올 것만 같았다

 

 

죽어 가던 나와 네가  한줄금의 비로 살아나다니

과연 나는 어디서 왔는가?

 

열대야에 에어컨도 윙윙 거리며 후꾼한 비람만 내 쏟고, 얄 궂은 파리가 등 뒤를 간지럽게 얄잔 거리니 신경질이 폭발해 잠을 설첫단 어젯밤을 생각하며 물먹은 들꽃을 바라봤다.

들깨밭에 물을 주다가  " 하늘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구먼~ " 하고 포기하던 아내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허공을 바라보며 " 비라도 한줄금 와 주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한탄한다.

이때 비가 온 것이다.

 

재수 없이 대상포진에 걸려 며칠째 성모병원에 통원 치료를 받아오며, 가슴속으로 치받는 통증과 더위에 폭발 직전인

머리통이 한줄기의 빗줄기로 싹 가시운 것이다.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편의점으로 갔다.

집이 혼자 심심해하는 손녀가 갑자기 생각나서 무언가 사다 주고 싶었다.

 

" 단추 쵸코렛  있어요? " 주인은 무슨 말 인지 못 알아듣고

" 쵸코렛은 저쪽에 있으니 가 보세요  " 하고 찡긋 하며 가리켰다.

 

손녀가 즐겨 먹던 마이쥬 말고는 아는 것이 없어 주섬주섬 여니곱개를 집어 계산대로 가지고 갔다.

 

하늘의 구름은 뿌였지만 공기는 시원했다.

당진 1교의 인도 데크에서 흐르는 당진천의 물을 보니 물살이 힘차 보였고, 보도 옆의 풀이 생기를 풍긴다.

 

당진 정보고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온다.

평소에는 짧은 바지에 희멀건 종아리가 거슬렸지만 오늘따라 시원했고 멋있어 보였다.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여기기보다는 역시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 또 한 번 깨달았다.

 

충무로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서 본

 

남은 한때

 

           박소영

 

꽃 진 자리마다

피었다가 지는 게

당연했던 날들

 

꽃으로 지나가는 자라마다

 

있다가 사라진

내 마음에 심긴 너

 

모두 왔다 가버린

시간이 남기고 간

꽃 진 자리 남은 한때

 

 

를 음미해 보았다..

 

오늘따라 늘 보아왔던 벽화가 상큼했고  길옆의 콩잎이 싱그러웠다

늘 나는 자연의 일부분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처럼 절실했던 것은 근래 없었던 일이다.

 

 

촉촉한 대지를 보면서 숙연한 마음이 더 느껴지는 병원 갔다 오는 길이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호기심이 많던 나는 온갖 종교를 섭렵해 왔고, 나는 어디서 왔는가? 를 천착해 왔었다.

 

풀에 맺힌 이슬은 어느 누구의 정령이며, 뜬구름과 바람은 또 다른 이의 혼령 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장자[莊子]와 양자 도약의 코드가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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