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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문학

신리성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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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짝이 와장창 부서지고, 관졸들이 육모 방망이를 휘두르며 봉두난발한 사내를 댓돌 위에 내 동댕강이 치니, 머리 얼굴에서 선혈이 낭자한 사내는 마당에 폭 고끄러 지며, 관졸은 사내를 무참히 때리고 또 때리더니 포승줄로 묶어 끌고 갔다. 이 집은 손자선(세례명 토마스)의 집이었으며, 기거하던 다불뤼 주교를 찾던 관졸들은 광분하여 보이는 사람이며 마구 체포하였다. 다불뤼 주교는 거더리 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였으니 이곳이 신리 공소였다. 

이렇게 무섭고 험악했던 장소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스럽게 놀고 있었다.

 내가 처음 신리에 간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신촌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친을 따라 신리공소의 옆 단칸방에서 생활을 했을때 였었다. 짚누리가 산처럼 높았었고, 싸락눈이 내릴 때까지 벼를 타작 했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농부들은 가을걷이 시작 전에 마당을 부뚜막처럼 논흙을 반죽해서 바르며 유리처럼 반들반들하게 했다. 벼 와 콩을 걷어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한동안은 짚누리 사이를 숨바꼭질하고 짚더미 속에서 하루해를 보내 기가 일쑤였다. 

내가 제일 무서웠 했던 곳은 변소가 있는 잿간 이었다. 연료가 짚이기에 재가 무척 많이 나오며, 흙으로 만든 재를 모아 두는 창고가 있으니 이를 재간이라고 물렀다. 잿간에는 온갖 귀신이 다 산다. 처녀귀신, 몽달귀신, 아이 귀신 등 수도 없다. 잿간을 옆으로 돌아가면 공소가 나온다. 나의 놀이터였다  

신리 공소가 성지 인 줄은 몰랐다. 나의 주위 사람들이 성지를 가꾸고 돌보고 있는지 전혀 몰랐었다

 

 

 신라 성지를 흔히들 카타콤바라고 한다. 하지만 "박해시대의 교우촌"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이 폭정자들의 눈을 피해 가며 천주교를 믿었고, 선교사들이 들락거리며 조선의 선교 거점으로 하였기 때문이지 사실은 지하 교회는 아니었다.  신리 옆의 거더리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면 신속해 아산만을 거처 먼 바다로 도망갈 수 있었고, 잠입하여 선교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었으며, 수로와 달리 육로로 관원이 이곳까지 오려면 한참 밖의 오지 중 오지이니 면천의 현감이나 홍주의 목사들도 관심 밖의 땅 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 조선 교구청이 있었던 곳인 줄 몰랐고, 주교가 기거하면서 "조선의 교회사"라는 책을 저술한 곳인 줄 몰랐었다. 

 

마을 한쪽엔 축구장 반 만한 네모 반듯한 공동 샘이 있었다. 아낙들은 이곳에서 식수도 하고, 김장철엔 무 배추도 닦고, 빨래도 했다. 오리가 떼지어 자맥질 했고 뱀이 물살을 가로지르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웃음꽃 피우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데도 모두 건강했으니 지금 사람들이 너무 약골이라서 그런가, 도저히 감이 오질 않는다.  

거더리(동내 이름) 앞의 수로는 갯물 이어서 조수에 따라 물이  들어오고 나가곤 하였다. 밤엔 도깨비불이 밤새 오르락내리락했으니 횃불처럼 큰 놈도 있고, 작은 놈은 뭉처 있었다. 나는 무서워하면서도 도깨비불을 보아 왔다. 나무 조각이나 부유물에 묻은 인광을 도깨비불로 알았던 것이다. 

 지금도 대낮에 들판 한가운데 있으면 방향감각을 잃어 미로에 들어선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소들 강문의 길마다 방향 표시와 함께 길 안내 표시가 도회지의 교통표지 처럼있다.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그때는 짐작 가듯이 완전 미로여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길을 잃기 일쑤였다. 그런데 문제는 봄철 안개 낀 밤길이었다. 정신 말짱 한 사람도 밤새 토록 헤매었으며, 이를 여우 홀렸다고 말들을 하였다. 이때 술이라도 살짝 걸치면 기와 혼이 몽땅 빠져 초 죽음이 된다.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고 들 했다. 

 지금은 너무 변하여 희미한 추억을 되살리려 해도 짐작이 가질 않는다. 사람들은 떠났고 남은 농가들도 농기계가 즐비한  정비 공장 같다. 

 

주민들의 생활은 깔끔해져서 집 앞까지 아스콘으로 포장되었고, 테라스의 화분이 값져 보이고 부티가 난다.  진입로는 당진 예산 간의 국도에서 옥금리 신석리를 거처 들어온다. 널찍한 주차장과 잔디, 성당과 사제관이 있다. 공소 자리에는  다불뤼 주교의 사제관으로 그대로 있으니 내가 뛰놀던 곳도 어렴푸시 짐작해 본다.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순례자나 학생 그리고 참배객들이 온다. 도보 순례자들의 긴 행렬이 꼬리를 물고 들어 오면 금세 넓은 성지가 꽉 찬다.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전에 이곳의 모습은 이러 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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