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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문학

당진 아미산(峨嵋山)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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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발송을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미산을 찾았다. 이제부터 일주일 동안 추석 연휴이니 이젠 내 세상이다. 황금 같은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까 설래 지는 것을 보면 나의 존립 근거가 되는 택배 발송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크긴 컸었던 것 같았다. 

 하늘은 높고 공기가 청명 하며 햇볕은 따사로웠지만 땀은커녕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다. 아미산의 식생은 소나무가 주종이고 굴참나무 떡갈나무 오리나무가 간간이 섞여 있으며, 이미 낙락장송의 풍모를 보이는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나무 들은 아직은 한참 커야 할 어린 녀석들이다.  

 잘 닦아진 임도를 걷고 있지만 숨이 가빠진 것을 보면 나의 방콕 시간이 너무 길었나 보다. 아미산을 끼고 산다고 맘만 먹었지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것을 증명한 샘이다. 걷기 운동을 하겠다고 스마트폰에 만보계를 세팅한 것이 언제인데, 작심삼일의 고질병은 나에겐 중병이었다. 오늘의 산행 코스는 아미행복교육원을 출발하여 2봉을 거처 아미산 정상을 등정한  하산은 삼거리와 헬기장 그리고 자작나무 길을 거치 코스로  했다. 

 

 

누군가는 아미산은 여인의 눈썹 같다고 하였고, 어느 이야기꾼은 아미산과 나무고개 다불산의 정령이 합하여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이 되었다고 하지만 주위 있는 절은 조그만 암자 정토사가 전부이다. 아미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배비산, 개산 이라고도 불렸다. 아미산은 해발 349m의 낮은 산이지만 주위가 모두 들판이고 구릉지대이며 평평한 야산이다 보니 나름 왕좌적인 모습을 보이는 산이다. 

임도가 끝나고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조그만 정자가 있고 산행안내지도가 있으며  입간판에 詩도 있어  관리자의 세심한 배려를 엿 보이게 하는 따뜻한 마음 감사드렸다. 이곳 정자와는 오랜 인연이 있다.  전부터 친구 몇몇이 산악회를 만들고 수시로 명산을 섭렵하던 때 일 이었다.  무언가 빠진 듯 허전하였으니 연초에 시산제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제물도 준비하고 축문도 쓰고 하여 당진의 영산인 아미산의 이곳 정자에서 정초에 시산 제을 지냈었다.  내가 산신 축을 읽고, 돼지머리의 벌린 입에 지폐를 끼워 넣고 꾸벅꾸벅 절을 했던 생각이 스멀스멀 살아나는 과거의 추억 속으로 빠저 보았다.. 

 산행을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탄탄대로 임도가 아닌 부드러운 흙길에 지압돌 같은 튀어 난 나무뿌리 밟으며 걸었다. 천천히 그리고 쉬엄쉬엄  숲 속을 걸으며, 지난날의 산행은 앞서 가려는 욕심에 땀으로 범벅되고, 먼지투성이였던 몰골을 회상했다. 흙의 촉감을 느끼며 천천히 걸으니 쭉정이 도토리와 익지 않은 가랑잎이 간간히 떨어지며, 평정심도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나의 정신적인 멘토이며 절친한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곱게 물든 나뭇잎은 잘 늙는 인간의 모습과 같다고 ~. “ 

건강한 나무가  햇볕은 잘 받고, 적당한 수분과 맑은 공기,  충분한 영양과 풍수해를 입지 않으면 오래도록 나무에 잎이붙어 곱게 물든다. 이처럼 평범한 자연의 섭리를 우리는 항상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또 이를 까먹으며 살아간다. 길가의 구절초에서, 숲 속의 억새풀에서  인생을 배우고, 산새의 날갯짓에서 피어오는 솜털 구름에서 인생을 배우니 자연은 나에게 선생이며 내 삶의 마지막을 의탁할 수 있는 안식처이다.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흩어진 다람쥐똥도 나의 분신이니 만물이 하나라는 장자의 지혜로움이 새삼 생각이 난다. 

 

 

아마산의 자랑이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관리자의 의지 때문 인 것 같다. 일부 사람들은 데크를 깔고 인공구조물을 잔뜩 만든 것을 개발이라고 생각하고, 자연 보존이 무능과 나태함 이라고 성토 하지만 이는 무지의 극치이다. 자연도 우리와 같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며 생로병사를 우리와 같이 하는 유기체의 집합이니 사자나 얼룩말을 붙잡아서 인간처럼 옷을 해 입히고, 모자도 쒸어 주고, 신발도 신기면 이들은 결국 병들어 죽고 말 것이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왔다. 동으로는 아산만과 삽교호 주변의 소들강문 황금 들판이 보이고, 서로는 다불산이 보이며, 남으로는 몽산이 보인다. 백두산의 정상이나 아미산의 정상이나 느껴지는 감흥은 똑같을 것 같다. 발아래 펼쳐지는 수림은 아직은 푸르지만 가을의 문턱에서 단풍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산은 삼거리 방향으로 택하였다.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누가 아미산을 낮은 산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는가?  지겹도록 무릎 통증으로 아파하며 지리산 천왕봉에서 법륜사로 하산길이  문득 생각났다.  

 자갈과 콘크리트 포장의 임도를 걸어 조금만 가면 헬기장이다. 이곳에 오니 불현듯 동창생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때 그녀는 옥색 블라우스에 흰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고 쇼트커트한 앞이마는 반짝 였다. 재경신평산우회 회장이었던 그녀는 홍조를 띤 얼굴로 회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마당발인 그녀는 경인지역의 선후배들을 모아  산우회를 운영하고 있으니 선거철 이면 항상 큰손이었고, 지역 행사에서는 거물들과 자리를 같이 했었으니 동창 중에서도 자랑거리였었다. 내가 정보화시범마을운영위원장 이었을때 그녀는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신평농협 사외 이사로 재직할 때도 자주 만났었는데 이젠 하늘의 별이 되어 어딘가에서  큰손답게  세상을 비출 것이다. 

 

 

임도는  다듬어졌으나 길 옆의 자작나무는 검으티티 하니, 떡가루처럼 희고 화선지처럼 얇고 은어 비늘처럼 반짝이는 수피를 볼 수 없는 초 죽음의 자작나무가 안쓰럽고, 자작나무 길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이곳의 기후 풍토 와는 잘 맞지 않는가 보다.  태생적으로 맟지 않는 곳에서 정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자연은 우리에게 또 가르쳐 주고 있다. 수변식물은 물기에서 크고, 애덜 바이스는 고산에서 자라며, 나 또한 지금의 삶이 대자연의 섭리에   합당하다면 이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산길 막바지에 악수터가 있다. 예전엔 플라스틱 조롱박이 있어 산행  마지막을 약수로 마무리하고, 길가 촌부의  좌판에서 동동주와  메밀묵으로 허기를 달랬는데, 이젠 황화철의 함량이 많아 식수로는 부적합하다는 경고판과 함께 약수는 세수 물이 되었고, 동동주와 메밀묵은 젊은 여인이 사장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키위주스로 목마름을 달랬다. 

 카멜레온처럼 자꾸자꾸 변해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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