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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문학

안개낀 경춘가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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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안개가 자욱 하다. 계절이 바뀌면서 안개를 자주 보게 되지만 가을의 짙은 안개는 흔하지  않은데, 오늘 새벽  안개는 유별나다. 내가 사는 이곳은 아산만이 인접해 있어 늘 안개에 대한 트라우마에 살고 있다. 서해대교는 안개 상습지역 이어서 봄철이면 해수면의 습기와 대기가 만들어낸  안개 때문에 곧잘 대형사고를 유발한다. 봄철의 짙은 안개는 한치의 앞을 가리지만 겨을의 새벽안개는 애교에 불과하다.  나는 오늘의 가을 새벽안개에서 상념에 잠겨 있다. 

 

 

오래전 내가 군에 입대하여 명월리 보충대이 있을때  이른봄 새벽 안개는 지독 했었다. 안개 때문에 지척이 안 보이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만 들렸고 잠못이룬 소쩍새가 울어 대는 무협지 에서나 볼수 있었던 괴기한 광경 이었다,

안개가 흩어지면서 지뢰표시와 함께 “ 눈뜨면 살고 졸면 죽는다~”  등 구호를 적은 팻말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금방 인민군이 나올것 같은 공포에 질린적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단 사령부인 명월리에서 한참 북으로 올라가야 철책선이 있었고,  넘어에 북한병사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 후 아들의 군 입대는 103 보충대가 있는 춘천 집결 이었다. 양수리에서 부터의 경춘가도는 정말 안개때문에 지옥 이었다. 전방 1m도 볼 수 없었으며, 나의 몸은 이디론가 깊은 환각에 빠지는것 같았었다. 차선은 물론 길바닥도 전혀 보이지 않으니 몸이 허공에 떠 있는것 같았고, 차는 한 발짝도 갈 수 없었으며 반대 차선의 차량에서 흘러 나오는 전조등도 미동도 없이 히미하게 보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쿵" 하는 툰탁한 소리와 경찰차의 경광등이 희미하게 번쩍이며 경고방송이 흘러나왔다. 지척에서 차들이 엉키고 아수라장이 된것이 분명 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내가 운전 이라도 하였더라면 미처 돌아 버렸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베스트운전자인 친구가 운전을 해 주었다. 그 친구는 서울에서 반평생을 운전한 무사고 모범운전자 였으며, 평소에도 너무 교통법규를 잘 지켜 답답한 때도 있었다. 친구들은 그를 네코라고 불렀다. 나는 아직도 그를 왜 네코라고 부르는지, 그리고 네코가 무었을 의미 하는지를 모른다. 

뻥뚤린 4차선 도로에서 남들은 시속100km 이상 달리는데도 규정속도인 80km를 고수 하기에 옆에서 답답해 하며 좀더 밞으라고 하여도 "요즘 차 밟아서 안 나가는 차 없다" 며 규정속도는 겨덜로 만든것 아니라고 핀잔도 주었다. 그런      친구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어 걱정은  되었지만 미동도 않는 차의 행렬을 보며 자꾸 시계를 보았다. 입소 시간은 아직 남아 있지만 불안한 마음을 숨길수 없으면서 자꾸 친구 얼굴을 보았었다. 

베테랑 운전자인 친구도 30년 넘게 운전을 했어도 이렇게 지독한 안개는 처음이라고 투덜댔지만 긴장하거나 두려워 하는 기색이 없어 저윽이 안심 되면서 관록의 무게감을 알았다. 

 차량 행열중에 초보운전자니 심약한 여성 운전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들의 껶었을 끔칙한 악몽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직 이 안개가 속히 사라지기만 빌었다. 지금 생각하면 누구에게 빌었는지 모른다. 아마 예수님, 부처님,  옥황상제님께 빌었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아내는 사색이 되어 말도 못 하는데 아들은 태평스럽게 잠만 자고 있다. 어젯밤 친구들과 송별회를 하던 꿈을 꾸고 있을까? 아니면 앞으로 자신이 할 각개전투와 낮은포복으로 흙밭에서 뒹구는 꿈을 꾸고 있을까? 

 긴장한 상태로 장시간 앉아 있어서 이었던지 온몸이 굳어져 오는것 같았다. 팔다리가 뻣뻣해지고 허리는 감각이 없어 진다. 나의 신체변화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전에는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 지옥같은 시간을 참고 견디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네비게이션 이라도 있었으면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알수 있었겠지만 그렇지도 않았고 교통방송을 통해 들리는 소식은 지독한 안개로 경춘가도가 교통마비라는 소식만이 들려왔다. 밖을 보네 조그만 조짐이 보였다 그렇게 무겁게 짖누르던 안개가 조금씩 움직였다. 친구인 운전자도 무언가 감이 오는지 눈에 생기가 나는것이 느껴진다. 

 

 

살그머니 차창을 열으니 습기먹은 바람이 뺨을 간지럽힌다. 안개가 찟어진 종이처럼 흐트러지며 서서히 앞이 보이기 시작 했다. 차창밖의 처참한 광경은 바로 나 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길가 둔턱에 처박힌 빨간 승용차, 추돌하여 가로수를 들이받은 아우디 승용차, 논두렁에 처밖힌 트레일러등 곳곳에 사고 차량이며, 사고 수습을 위한 경찰차와 레카차들이 한쪽 차선을 차지하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안개구역을벗어났다. 

우리 인간은 모든것을 잘 할수 있다고 자만해 왔고 방자스럽게도 만물 영장 이라고 뻐겨 왔는데, 풍운의 조화중 가장 하찿은 안개 때문에 이토록 곤욕을 치루었다고 생각하니 역시 인간은 갈대와 같은 연하고 여린 존재에 불과했다. 스스로를 "생각하는 갈대"라고 위안 삼으려 하였지만 자기 기만이며 정신승리에 불과했다. 그토록 길게만 느껴젖던 안개속의 악몽도 결국은 길지않은 시간 이었으며 다행히 입소 시간은 댈수 있었다. 

그 후 시간은 살같이 흘러 아들이 벌써 결혼하여 사회생활하며 자녀까지 낳았고, 나는 할아버지가 돠었으며 그때의 안개 악몽은 추억의 한끝에서 가물거리며, 그때 그 운전자 였던 친구를 가끔 만나면 그때 신세 지은것을 마음속 깊이 감사 드린다. 지나고 보니 우리의 삶은 그때의 그 안개와 같이 질곡에서 금방 질식해 죽을것 같았으나 이는 잠시일뿐, 안개 흐터지듯이 평상으로 돌아가는것을 살면서 보아왔고 배워 왔다. 지금은 웬만한 일 따위는 "그까짖거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하는 뱃장도 생겨 났다 

하지만 인간은 풀더미 가 썩어 그 속에서 태어나는 반딧불 이란것을 아직도 모르는 철부지에 불과하다. 짚더미나 풀더미속에서 태어난 반닷불이 밤하늘을 비추듯이 지금의 내가 세상에 조그만 양지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기원 했다.  

오늘의 새벽안개는 감추어졌던 나의 혼령을 볼러 오는것 같은 상쾌한 안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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