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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문학

손녀와함께 걷는 개천절의 신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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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개천절이다. 국경일인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중에서도 대상이 신화이니 개천절엔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모호한 국경일이다.

단군할아버지를 숭상 하는 대종교 측 에서는 개천절을
  

대종교 측에서는 개천의 본래의 뜻이 단군의 건국일이 아니라 환웅(桓雄)이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上元 甲子年)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단다. 

 

모두가 신화에 대한 이야기 이며, 우리는 국경일 이어서 하루 쉬는것으로 족하고 마는것 인가 보다. 

이번 개천절은  대체공휴일 이라서 하루 더 쉰다고 손녀는 좋아했다.  거리는 국경일 답게 가로등국기꽃이에 어김없이 태극기가 꽃혀 있기만 그이상의  경축행사는 알수 없었다. 

단군성전에서 개천대제를 지낸다고 하지만 볼수는 없고 하여 손녀에게 완웅과 웅녀이야기, 단군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였더니  “ 할아버지 다 알아요. 헤모수 이야기도 알고 유화 이야기도 알고요, 주몽 이야기도 알아요”  하며 으쓱해 한다.

 깜짝 놀라 아니 어린 네가 어떻게 개천 신화를아는가 하며 신통해했다.

 

 

“ 애야 어느 민족이나 건국신화는 있단다. 이는 신화이므로 지금의 잣대로 따지지 말고 그대로 알고 있으면 된단다. 오래된 나라 일수룩 신화는 있게 마련이며, 그리스 신화는 동화책에서도 보았드시 신들의 세상은 우리와는 다른 또하나의 상상 속에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꾸미고 있으,  중국의 삼황오제의 이야기도 끝없는 이야기의 바다로 우리를 즐겁게 한단다. 우리의 단군에게도 네 나름대로 신화를 풍성하게 덧붙여 보자꾸나". 

"우리가 사는 이곳도 신화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단다. 한번 들어 보지 않으련"   하고 물으니 손녀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 때 조선 중엽 이었단다. 저기 보이는 아파트 뒷쪽편에 망객산이라고 하는 얕으마한 산이 있다. 밍객산이란 찿아온 손님을 대접하고 이별하는 손님을 아쉬워  배웅하는 산 이라고 하여 먕객산이라고 이름 하였단다. 

이 산에는 김복선 이란 허우대가 장대한 사내가 홀어머니 모시고 작은 초가삼칸에서 살고 있었지. 김복산은 천민 이여서 남들과 잘 어울려 지내지도 못했고, 골짜기에 다랭이 논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았단다. 하지안 감복선은 천민 이면서도 총명하여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가 있었으며, 그의 명석함은 입소문을 통하여 널리 전파되었었다. 김복선은 저쪽 뒤에 보이는 오룡산으로 땔감 나무를 하러 다녔으며, 지금은 저수지가 막혔지만 동네 가운데로 흐르는 새내 가의 길이 항상 김복선이 지게를 지고 걷던 길이었단다.

 

 

 예전의 새내는 괘나 넓었고 냇가의 모래는 은빛의 고운 모래가 굽이마다 펼처 젓으며 오룡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은 사시사철 흘렀으니 김복선은 흠뻑젖은 잠뱅이를 벗고 몸도 닦고 모래성을 쌓아지며 밤새 보았던 병법서의  진법도 연습하고 그늘에서 잠도 하고  하면서 숨은 재주를 연마 했다고 한다. 그날도 나뭇지게를 바처놓고 한참 늘어지게 낯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홀연히 안개가 피어오르며 아릿다운 공주가 나타나

" 나는 서해용궁의 공주인데 부왕의 명을 받아 아산만을 거슬러 새내에서 장사를 만나 이 여의주를 전하니, 새상을 위해 큰 일을 할때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것이요.그리고 오늘 저녁 그대는 귀한 손님을 맞이 할테니 집에가서 기다리시요"   하고는 홀연히 아래로 내려가 바닷쪽 으로 사라졌다. 

잠을 깬 김복선은 오른손에 쥐어진 여의주를 보곤 예사꿈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급히 집에가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망객산의 황혼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울때 시종 한 사람을 데리고온  사나이는 자기를 아산군수 이지함 아라고 소개 한다. 토정 이지함은 그때 이미 이 세상의 앞을 내다보는 신통력을 가진 사람으로 토정비결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 이었다. 

이지함도 풍문으로만 듣던 김복선의 용모와 눈빛으로 그의 사람 됨됨이를 단박에 알아 보았고, 김복선이도 양반 중에서도 으뜸 양반인 아산군수 토정선생이 직접 찿아와 주니 감읍 할 따름 아었다. 이들은 의기 투합하여 친구의 의를 맺고 앞날에 닦칠 국가의 장래에 대해 밤새도록 이야기하였다. 토정은 동이 훤이 트니 이젠 가봐야겠다고  일어서서 작별인사를 하고 총총이 아산으로 돌아갔으며, 김복선은 산마루에서 친구가 안 보일 때까지 배웅을 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김복선이 토정을 배웅 하는 모습을 보곤 망객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김복선은 심기일전해서 무술을 연마하고 토정선생이 준 병법서로 전술과 전략을 학습해서 일기당천 무장이 되었으며 토정의 주선으로 율곡을 만나 10만 양병의 중심이 되는 국가의 동량이 되었었다. 

하지만 세월은 김복선의 용맹과 지력을 펴는데 허락하지  않았었다, 토정선생과 율곡이 세상을 떠난후 김복선도 세상을 떠났으니 이들이 저 세상으로 간후 10여년이 지난후에 조선의 최대 환란인 임진왜란이 발발 하였다고 한다, 시절의 인연이 맞았다면 이순신이 바다의 영웅이 된것 처럼 김복선은 육지의 영웅으로 조선인의 추앙을 받았을것 이다. "

 " 할아버지 이 근처에서 그런 영웅이 탄생 했단 말 이예요? 자손은 지금 살고 있나요?  그 자손은 좋겠다~  "

하는 손녀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사람들은 "푸르다크영웅전" 처럼 어떤 영웅을 만들고 형상화 하고 싶었한단다. 우리 주위에서 누구를 깎아 내려 하지만 말고 영웅으로 키우고 추앙하면  이것이 바로 자신이 크는 길 이란다

 조금 더 크면 할아버지가 지어낸 황당한 이야기가 말하는 의미를 손녀는 알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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