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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문학

단양 보발재 에서의 망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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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가장 잘 익은 단풍잎을 따고 싶어 단풍 명소에 가기로 했으며, 약간 늦긴 했지만 집 앞의 단풍나무가 아직도 생생하니 늦게 까지 기다려준 단풍잎이 더 잘 익었을 것 이 라고 생각하고 느긋해했었다. 단풍 명소를 검색하던 중 충북 단양의 보발재가 눈에 확 띄었으니, 구곡 양장처럼 구비구비 언덕길이 좋았고 사진으로 본 양옆의 곱게 물든 단풍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았다.

올해 유독 곱게 물든 단풍잎을 천착하게 된 것은 나의 친구 y

" 잘 익은 단풍잎은 잘 살은 인간의 삶과 같으니 "

  향기롭고 아름다운 단풍처럼 곱게 남은 시간을 보내라는 조언의 말을 듣고, 친구에게 고마워 올 가을앤 곱게 물든 단풍을 따서 보네갰노라 하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이행하고 싶었다.

그래 올해는 보발재로 가자

 

 

 

일단 목적지를 정하니 바빠지기 시작했다.숙소를 대명콘도로 예약하고, 목적지인 보발재에 대한 상세검색도 하고 곁들여 충주호 유람선,, 고수동굴, 구인사도 검색해 보았다.

딸의 가족과 함께 가기로 하였으며, 운전은 듬직한 사위인 감 서방이 맡기로 했다.. 고구마도 찌고, 계란도 삶고 하며 덩달아 바빠진 아내는 하룻밤을 묵어오니 집 잘 보라고 happy에게 밥을 듬뿍 주고, 그위에 뼈다귀 두어개와 삶은 북어대가리를 얹어 주었다.

 귀염둥이 손녀들과 살를 맞대며 여행하는 것이 즐겨 웠으며, 아이들도 재잘거리며 좋아했다. 그런데 김서방은 네비의 추천경로라며 국도로 주행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좋아 난리를 치더니 잠시 바로 잠이 들었다. 고개를 가누지 못하며 잠자는 모습이 애처로웠으나 별도리 없었으며 바로 세워 주기만 반복했었다.

차창밖의 들판은 황량 했으며, 인적마저 보이지 않는 모습이 마른 삭정이 같았다.

몇 년 전 중국의 정주에서 시안까지 고속열차를 타고 가면서 본 차창밖의 모습이 떠 올랐다. 차내 벽에 부착된 주행속도의 계기판은 350km를 가리키고 있었으며, 내가 탄 열차가 달리는 곳은 삼국지의 한가운데인 중원이었는데, 밖의 모습은 영웅호걸의 질풍 같은 말달리기가 아니라 넓은 들판 가운데 너와집 같은 집들이 병영처럼 붙어 있는 인민들의 취락이 있었으며, 농부들은 달구지에 수수깡인지 옥수숫대인지를 싣고 너른들펀을 무심히 지나가고, 부부인듯한 또 다른 사람은 가을 거지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속삭였다.

일전에 승용차를 따고 정주에서 사안까지 갈 일이 있어서 가는데 휴게소 앨 들려 화장실엘 갔더니 문짝이 하나도 없고~.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니까~ 히니 옆에 있던 젊은 일행은

큰길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마을 공동 화장실이 구덩이만 파 놓고 그 위에 나무를 걸쳐놓고 그 위에서 용변을 보더 라니까요~”한다.

안내방송에서 시안이 가까워 왔음을 알려 주었다. 열차가 어느 협곡을 지날 때 아까 그 청년이 말한다. 황토벽에 숭숭 뚫린 구멍을 가리키며

저 구멍이 무언지 아세요? 사람이 살고 있대요~”라고 말했다. 설마 대명천지 문명사회에서 그런 일이~라고 말했지만 워낙 큰 땅이니 그런 기인들이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지 하며 씁쓸해했었다.

 차는 진천 땅에 들어 셨으며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나사 화장실에 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도 화장실은 없었고 이이들에게 "생거진천 사거 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의 유래 이야기를 해 주겠다는데도 화장실~ 화장실~ 하며 아우성이었다. 겨우겨우 편의점에서 화장실 용변을 본 후 아이들은 아예 차에 타려고도 하지 않았다. 김서방이 신봉했던 추천경로가 와르르 문어 져 버린 것이었다.

부랴부랴 고속도로 IC를 찾아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길은 뻥 뚫리고 한산했으며 아이들도 속도감에 리듬 탓인지 희희 낙낙 했으며 예정시간보다 과히 늦지 않게 단양에 도착했다.

 

 

 

보발재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보발 제로 가려고 식당엘  들렸다. 기대에 잔뜩 부풀어 사진에서 본 단풍 이야기를 했으며, 내가 원하는 단풍잎은 가장 늦게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라고 말했다.

그때 식당 아주머니가.

보발재 단풍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서 지금은 어쩔지 모르겠네요

라고 했으며, 그 아주머니의 속뜻도 모르고  

당연 하지요.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면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하고 맞장구쳤다. 보발제는 25km의 거리였으며, 길가에 작은 단풍나무가 조금씩 보였다. 그런데 그 마저도 낙엽이 져서 앙상했으며  네비게여션 상으로 거의 왔는데 단풍나무의 장관은 볼 수 없고 황량하기만 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보발재 전망대로 내비게이션을 수정한 후 조금 더 오르니 길옆에 승용차 몇 대가 옹기 종가 세워 있어 자세히 보니 데크로 만든 전망대가 있었으며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 전망대로 올라가 앞을 보니 사진으로 보아왔던 구곡 양장의 내리막 길이 있었으며, 단풍은 모두 떨어져 낙엽이 되어 흔적도 없고  나뭇가지 사이로 찬바람만 불어왔다.

" 아뿔싸 늦어 버렸구나."

마지막 잎새 운운하던 나는 단풍잎 흔적도 없는 황량한 보발재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내친김에 언덕 아래에 있는 구인사까지 갔다. 그런데 구인사 주차장에서 사찰 경내까지 가려면 2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고 하니 꼬맹이 손녀들을 데리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만 접어 버렸다.

이번 단양 나들이는 앙꼬 없는 찐빵이 되어 버렸다.

https://youtu.be/LXoucBrXHAo

 

충주호에서.

장회나루에서 충주호 유람선은 탔던 것은 아마도 10년 도 더 된 오래전 일 이이였다. 그때의 충주호는 갈수기 여서 선착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배를 타고 내렸었다. 그리고 수면도 저만큼 아래 여서 봉우리만 까맣게 올려대 보았던 기억아 났다. 하지만 이번 청주호의 수면도 만수위에 가깝고, 거울같이 잔잔했으며 물에 비췬 봉우리들이 아름다웠다.

나는 철인 퇴계선생과 두향의 꿈같은 사랑 이야기를 이번 단양길에서 처음 알았다. 황진이 이야기도 있고, 매창 이야기도 있지만 늙은 고을 수령과 어린 관기가 근엄한 신분 사회에서 연정을 죽음 앞까지 간직할 수 있었다니 놀랍다.

두향의 글솜씨와 가무 그리고 가야금 솜씨는 뛰어났으며, 퇴계도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관기가 아닌 인격체로 마음으로 교감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매화를 좋아했으며, 두향은 퇴계의 처소에 매화를 분에 담아 놓아 드렸으며, 매화처럼 고고한 두향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퇴계가 두 아내를 저세상에 먼저 보낸 후 고적한 날들을 보낼 때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고 힌다.

퇴계가 풍기군수로 떠난 이후 두향을 만난 적 없었고, 70세 퇴계가 세상을 하직하니 강선대 아래 초막에서 일편단심  퇴계만을 생각하던 두향도 뒤 따랐다고 한다.

평소에 퇴계와 자주 거닐었던 강선대 앞에 두향의 묘소가 있단다. 옥순봉 금수산의 경관 또한 빼어 났으니. 옥순봉의 기암절벽을 화폭애 담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 호암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중국의 장가계를 가 보진 못했지만 우리 땅 우리 물이 있는 강선대와 옥순봉을 더 좋아한다. 이곳엔 우리의 맥박이 있고 숨결이 있으니까.

    아침에 보는 집 앞의 단풍나무가 더욱더 화려하게 가을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듯 향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이는 단양의 보발재에서 볼 수 없었으며, 대명리조트의 애지중지  단풍잎보다 훨씬 아름다운 단풍이었다.

나는 왜 단양의 보발재 까지 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을 알 수 없었다.

" 몰라서 그랬던 거야~.  멋지고 그럴듯한 것을 찾으려면 의례 외부의 유명세를 탄 곳에 눈길을 두었던 내가 바보였어 "  하며 자책도 해 보았다. “

 남의 밥 콩이 커 보인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내것은 늘 부족하다고 비하해 왔었다. 식사리면 무조건 검색을 하여 맛집을 찾았고 결과는 대부분 실망이었다. 집밥의 소중함을 외면한 탓 이리라. 관광지 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름 난 곳을 찾지만 대부분 헛물만 키다 돌아왔다.

나는 상품에서는 노브랜드의 신봉자이다. 허울 좋은 브랜드 값으로 값만 비쌀 뿐 가성비가 중소기업 제품만 못한 것이 허다했다. 그래서 나는 공산품을 사려면 당진 어시장 2층 노브랜드 상생점을 찾는다. 그런데 단풍 명소 단양까지 가서 멋진 단풍잎을 구하려 했던 생각을 했으니 자신이 어이가 없어진다.

나는 한 잎 한 잎 단풍잎을 따서 책장 사이에 끼워 놓았다가  나에게 "곱게 물든 나뭇잎처럼 남은 시간을 보내라고" 알려준 친구 y형 에게 고이 보낼 것을 상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나는 캐나다의 국기에서 본 것과 같은 반듯하고, 깨끗하고, 험 없으며 , 아름다운 단풍잎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멀리서 본 화려하고 불꽃처럼 아름답던 잎이 하나하나 놓고 보니 흠집 투성이었다.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비바람에 찢기고 새가 똥도 싸고, 벌레가 잎도 갉아먹으며 지금까지 견디어온 단풍잎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으며, 나도 녀석들처럼 나의 생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람의 삶도 단풍잎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는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지만 구비구비 배어있는 고단함의 연속이 우리의 삶이다. 캐나다 국기의 단풍잎 같은 완벽한 잎새가 없으며, 굴곡 없이 탄탄대로만의 인간은 없다는 것을 친구인 Y형은 나에게 단풍잎에 빗대어 가르쳐 준 것 같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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