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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문학

철야 참선수련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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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참선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참선 수련은 제일 가까운 곳이 수덕사의 템풀 스테이 밖에 없었으며, 나의 집에서 수덕사 까지는 너무 멀었고, 며칠간 템플스테이에서 숙박하면서 참선을 배울 처지도 안되어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나의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거리에 참선을 배울 수 있는 사찰이 있다니 고마운 일이며,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등록을 해 버렸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 눈으로 처다 보았다.

 

작년 여름 이었다. 낮에는 불볕더위이어서 녹음이 더위에 축 처져 있었고 매미도 지친 듯 가끔가다 쓰르름~맴맴~하다 이 마저도 그쳐 버렸다.

아내가 시원한 막국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전에 가 보았던 해미 읍성 근처의 막국수집엘 갔었으며, 돌아오다 내가 자주 가는 사찰에 들렸다.

이 사찰은 유서 깊은 명찰이며 아담하고 소박한 멋이 정말 맘에 들어 여러 차례 들렸던 곳이다. 이 사찰의 특이한 점은 건물의 기둥이 조선소나무의 원형 그대로 여서 정감이 더 했다.

대웅전과 요사채가 다른 사찰처럼 위압적이지 않고, 초가집처럼 오밀조밀하고 정감이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았다. 사찰의 뒷산도 올라가 도 보았고, 연못의 버드나무 옆에서 솔바람의 감미로움도 맛보았으며, 범종의 은은한 종소리가 귓전을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이때 눈에 띈철야 참선 회원 모집”의 현수막이 종무원 사무국 잎에 걸려 있었다.

나는 무작정 입회원서를 쓰고 나니 사무국의 여직원인 듯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싱긋 웃으며

 “ 참선해 보셨어요? “  하고 묻는다.

 아뇨. 하지만 평소에 관심 있어 왔으며, 잘해 보려고요 “라고 대답하니

~ 재미있어요.묘미에 빠지면  마니아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 라니까요. 복장 편히 하시고 오후 7시까지 오세요하며 눈을 찡긋 하며 웃는다.

 

 

오후 6시에 사찰 입구에 도착하니 아직도 산나물 파는 행상 할머니들이 좌판을 걷지 않았다. 어쩌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치나물, 소리쟁이 호박 꼬지, 참기름 등 팔려고 앉아 있는 것이다.

이를 뒤로 하고 조금 올라가니 주차장이 있다. 지금부터 사찰까지 가려면 2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 등산로처럼 난 산길을 오르는 방법과 아스팔트로 포장된 탄탄대로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오전에 아내와 함께 왔던 길은 등산로 길을 택하였지만 지금 참선 수련을 하러 왔을 때는 아스팔트 차도 길을 택했다.

탄탄대로 차도 길 이라지만 굽이굽이 꺾어 올라가야 했으며, 산짐승도 보이고 아름드리나무가 깊은 마법의 성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일반사찰에서 보았던 일주문도 없었고, 사천왕도 없었으며 법종만이 길손을 맞이 했다.

사무소에 들려왔노라고 신고하니 주지스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합장을 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난생처음 주지스님께 하는 인사였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바른 인사법 인지 알지 못했지만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아서였다.

주지스님과의 독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머뭇 거리고 있으니 인자한 얼굴로 편하 않으라고 하셨으며 얼어붙은 나의 몸과 입술을 녹여 주셨다.

주지스님은 오느라고 수고했으니 차를 타 주게 노라고 하셨다. 접시에 놓인 찻잔은 조그만 나무 찻잔이었다. 찻잔을 하얀 수건으로 몇 번이고 닦으셨다. 찻잔의 속과 겉 그리고 찿찬의 위와 아래를 천천히 몇 번이고 닦으신다. 포트에서 김이 퐁퐁 나니 두 손을 바처 천천히 찻잔에 팔 할쯤 채운 후 내게 마시리고 권 하셨다.

보이자 였다. 차 맛을 모르는 나는 언젠가 선물로 받은 보이차는 쓰기만 하고, 맛의 진미를 몰랐으므로 그냥 구석에 체 박아 두였었다. 그런데 중국의 청도에 갔다가 청도 한인회장의 안내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보이차 전문 판매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보아 차만 전문으로 판매하고 이었으며 매장의 넓이는 30여 평 정도였으며, 똬리처럼 만들어 놓은 보이차가 작은놈은 손바닥 만한 것부터 큰 것은 큰 항아리 만한 것이 빈틈없이 꽉 차 있었으니, 작은 것은 20여 만원부터 시작하여 큰 것은 수천만 원 까지 한단다.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는 보이차의 향내는 그윽했으며 젊은 부부의 바쁜 속에서도 한국에서 온 우리를 반갑게 대해 주었다.  윈난 성에서 들여온 보아 차  맛을 보여 주었고, 작은 보이차를 선물로 주었다. 이렇게 귀한 보이차를 집안의. 방구석에 처박아 둔 나는 보아 차에게 미안해했으며, 그 후 틈틈이 음용했었고 이후 보이차의 맛을 알게 되었다.  

주지스님은 차를 마신 후 빈 찻잔을 하얀 마른 수건으로 몇 번을 닦고  접시도 닦으셨다.

머그컵에 맥심 커피를 타서 먹고 맹물로 헹구어 내던 나는 다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선 수련이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 만났던 사무실 접수받던 단발머리 여성 수련자가 제일 먼저 들어왔고, 나머지 중년의 남성 수련자들이 다섯인가 여섯 명이 들어왔다.

주지스님의 방에서 참선 수련을 하였다.

오후 8시부터 시작한 참선 수련은 가부좌를 하고 정좌한 후 손을 가만히 무름에 손을 얹어 놓고 참선의 삼매경에 들어갔다. 나는 참선은 처음이지만 기공수련을 받은 적이 있어 가부자 자세는 어렵지 않았다. 주지스님은 참선 전에 처음 입문자가 해 야할 방법 등을 가르쳐 주지 않으셔서 무작정 곁눈질 해 가면서 이들이 하는 것을 연신 흠처 보았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 다리가 저려오고 허리가 뻣뻣했다,  나는 참선의 기본도 몰라 내가 전에 했던 기공수련의 방법대로 했으니, 내가 하는 것이 기공인지 참선인지 구별이 안 되었다. 2시간 참선 후 주지스님의 죽비 소리를 듣고 휴식을 했으며, 다른 참선 수련자 들은 기지개도 켜고 몸통 돌리기도 하며 몸을 풀곤 했지만 별 말은 없었다.

12시가 넘어선 휴식시간에 주지스님의 선방 앞에 있는 탑을 도는 탑 돌이를 하면서 잠을 깨웠다. 합장을 하곤 탑을 돌았지만 머릿속은 하얄 뿐 아무 생각을 못 했다. 탑돌이는 영화에서 보았을 뿐 처음 해 보는 것이었으니 합장을 하는 것도 선임자들이 하는 대로 쫓아했으며, 제일 앞의 주지스님을 따라 줄을 이어 간격을 유지하며 돌고 또 돌았다.

십여 바퀴를 돌더니 주지스님을 따라 다시 선방으로 들어갔으며, 이렇게 하기를 몇 차례 하니 허리며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니고 제멋대로 퍼져 버렸다. 노 주지스님은 수련으로 단련 되선지 끄떡없었으며, 다른 수련자들도 잘 참아 내었다. 먼동이 틀 때 우리의 철야 참선은 끝났다

자신의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만용을 부린 자신을 후회하면서 두어 차례 더 갔다.

그러나 끝나 수료를 하지 못하고 도중하차 하였으니, 나의 용두사미는 오래도록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 남을 것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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