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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문학

코로나19가 확 바꾸어 놓을 우리 결혼, 장례의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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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이제부터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생활사적 풍속도는 쉽사리 바뀌는 것이 아니며, 갑오경장이나 6, 25 전쟁 같은 경천지동 할 일이 아닌 한 한참의 후대까지 이어질 규범들이 지금 확 바뀐 것이다. 그만큼 코로나19는 충격적이었으며 시대의 변곡점인 것을 후대 역사는 말할 것이다.

평소 같으면 청첩장을 하루에도 몇 장씩 받는 초겨울이다. 가을 걷지가 끝나고 농촌의 일손도 한시름 놓이니, 때는 이때다 하고 청접장을 쓰나미 처럼 쏟아 내었다. 이에 질세라 고령 노인들도 계절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부고장도 가세하여 얄팍한 농부들의 지갑은 시련의 계절 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안전 문자가 또 확진자의 기록을 경신했다. 엄중한 시기이다 보니 정첩장을 보내는 사람도 자제하고, 부고도 자연 눈총을 의식하게 된다. 눈치코치 없이 이를 보내는 이들 에게는 합당한 핑곗거리로 코로나 때문이라고 둘러 댄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애경사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애경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결혼식장

자녀의 결혼식을 앞둔 부모는 1년전 부터 매사가 바빠진다. 농사를 해가면서 십일조처럼 혼사 때 쓴다고 따로 떼어 둔다. 이런 꾸러미가 왕 팥, 녹두, 수수, 콩, 등 올망졸망한 꾸러미로 방의 윗목을 차지했다.

“술맛이 좋아야 잔치 잘했다고 하는 것 이여~ “하면서 정성 들여 술도 담는다.

대부분은 예식장과 피로연을 달리 하니 찬치를 두 번이나 치르는 것이다. 이웃은 선 3일, 후 3일이라고 하며 다람쥐처럼 드나들어 술과 음식을 축 낸다.

 예식장은 신랑 측에서 정하게 되니 장소가 어디든 신부측은 코뚜레 송아지 처럼 하객을 동반한 버스를 몰고 가야 했다. 이때 준비해야 될 물품으로는 신랑측에 건네 줄 예물로는 술과, 고기, 과일과 떡, 그리고 건어물 등을 가자고 가야 했었다. 그리고 버스 안의 하객들에게 대접할 음식으로는 수제 동동주와 안주, 떡, 과일들을 부족함이 없이 준비해야 했다. 

하객들은 평소에 혼주가 대인관계에 원만했으면 버스의 자리를 채우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그렇지 못했으면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사정사정해가며 버스의 좌석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평소에 꼴사나웠으면 차림새는 갈 것 같이 하곤 버스 주위를 서성 서성 하며 혼주가 빨리 타라고 채근하면 

" 글쎄, 쌍출이 나서~" 하며 버티다가 마지못해서 타는 척한다.

버스가 출발하면 혼주는 버스기사에게 팁을 넣은 돈봉투를 주며, 이는 관행 이어서 주고받는데 망설임이 없다. 이 팁은 정시에 예식장에 정확히 도착시켜 달라는 암묵의 계약이었으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일이 크게 그르치게 된다.

만약 서투른 기사가 시간 전에 일찍 도착시켰다면 짱뚱어를 갯벌에 풀어놓은 것처럼 인파 속에 뒤섞인 하객들 찾아 헤매야 한다.  혼주는 사돈댁에 줄 예물 꾸러미를 갖고 계단에 앉아 처량하게 예식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만약 버스가 고장 난다던지 차가 막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혼주와 신부만 버스에서 빠져나와 지나가는 택시나 화물차를 타고 비상등을 켜고 예식장으로 돌진한다.

예식장 마무리를 하고 집에 오는 버스 안의 모습에서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사회자라고 자처하는 자가 슬슬 바람잡이 하면서 모사를 꾸민다. 가수라고 자처하는 자는 꺾기 하며 “안동 역 “을 구성지게 부른다. 그 후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혼주와 하객은 한 덩어리가 되어 삐 빠빠~ 룰라~ 하며 모두가 광란의 카니발을 펼친다. 기사도 은근슬쩍 거들면서 메들리, 뽕짝을 번갈아 가며 집에 다 오도록 흔들어 대니 허리춤이 풀어져 속곳이 보이고, 주머니 속의 지갑도 어디로 가서 안 보인다.

이것이 얼마 전 혼인 풍속도였다.

 

 

 

장례식장

초상이 나면 상주는 우선 연반 계장 한태 연락하고, 연반계장은 계원들 한에 연락하는 비상 연락망이 구성되어있다. 계장의 임무는 막중하여 상주를 대신하여 부고장을 내보내고, 지관을 불러 장지를 감찰하고, 상가에서 소용되는 물품을 구입하고, 발인의 인원을 수배하고, 봉분 조성까지 해야 한다.

봄날 긴긴해에 초상이라도 나면 3일 동안 술과 밥을 실컷 먹을 수 있으니 계원들에겐 횡재였었다. 거기에 상갓집의 얼뜨기 사위라도 있으면 놀려먹기 십상이니 금상첨화이다.

연반 계장한테 밉보이면 아주 고약한 곳으로 부고장을 가지고 가야 했고, 살살이는 상포 집엘 가서 물품 구입을 하면서 상포 집주인으로부터 허드레 지게 대접을 받고 온다.

문상객 수가 상주의 위세를 보여주는 바로 메타 이므로 초상이 임박했으면 관내 초상집을 빠지지 않고 발 품팔이하면서 품앗이 짬이듯이 눈도장을 찍어 놓고, 이자가 나의 애경사에 몇 번 왔고 부의금은 얼마나 했는가를 상기해 둔다.

 

 시신을 안치해 놓은 안방에서는 자매 또는 오누이가 평소의 앙금을 빌미도 싸움판이 벌어진다. 문짝이 와장창 하며 부서지고 딸은 남편을 끌며 밤중에 집에 가지고 난리를 치며, 아들놈은 매형한테 손찌검을 하며 난장판이 된다. 사랑방에선 이에 아랑곳없이 화투판의 판돈은 커지며 나중엔 원정 온 타자들에게 몽땅 털린다.

 이튿날 아침 연반 계장이 발인 축을 읽으면 뿌시시 잠이 깨 봉두난발한 상주 일행은 절에간 샌님처럼 조용 하기만 하다. 발인 축 읽기를 끝낸 연반계장이 상주는 곡 하라고 질책하면 여자들은 업어져 땅을 치며 통곡을 한다. 상주 곡 그만하고 구령하면 오케스트라의 시작과 끝 처럼 절도 있게 곡을 한다.

곡 하는 모습을 보곤 동네 부녀들은 소곤소곤한다. 신발 한 짝으로 땅을 치는 가 하면 자신의 머리칼을 부여잡고 뒹굴기도 하고, 한쪽 구석에서 흑흑하고 흐느끼기도 한다.  지금까지 가만있다가 상여가 출발하려고 하니 그제서 장강 틀에 매달리며 아이고, 땜 놓기도 하는 딸도 있다. 요령꾼은 목소리도 구성져야 하지만 사위 다루어 먹기를 콩떡 먹듯이 해야 했다.

조그만 개천이라고 건너려면 사위를 불러 내어 노잣돈 없어 못 간다고 하고, 다리라도 건느려면 노잦돈 없이 못 간다고 하며 돗자리를 깔아 놓고 사위에게 절을 시키고 돈봉투를 갈취하며, 사위도 이를 미리 알고 넉넉히 준비해 가지고 온다.

이렇게 하며 장지에 도착하면 산역 계원들이 매장 준비를 끝내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안전 안내 문자가 또 왔다.

 “[당진시청] 2021.12.10.16시 기준 확진 자 13명 발생 총 1527명. * 60세 이상 3차 추기 접종 대상자 접종 바람.”

비상시국이다. 이린 때 눈치 없이 청접장을 보내는 사람은 공적으로 지탄을 받고, 청첩장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오늘의 애경사를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변한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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