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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문학

쪽빛바다 삽교천에 떠 있는 조각배 보며 분노하고 있었을 s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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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인 삽교천의 물살은 거울처럼 잔잔 했다.

광폭하게 굴며 함상박물관의 구축함을 삼킬듯한 물보라를 어디로 감추고 산골의 처녀처럼 수줍어하는 듯 보였다. 이태백은 물에 비췬 달을 보곤 미쳐 버려  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명경대의 명경지수도 이처럼 고요하고 잔잔 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름바다가 재기 발랄한 청춘의 아이스크림이라면  거울 바다는 나이 지긋한 장년의 진중함이 배어 있는 얼음골 가마소이다.

나도 젊은 시절엔 약동하는 청춘의 바다를 무척 좋아했지만 이젠 정중동인 겨울바다가 더 구미에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있듯이 살며시 찾아오는 빛바랜 추억이 떠오른다.

 

 

s는 나의 군대 동기였다. 아마 신병교육대에서 만나 것 같다. 키는 호밀처럼 훌쭉했지만 갈비씨 여서 바람이 불면 흔들흔들할 것 같은 강골은 아닌 캐릭터였다. 나의 작달막한 키와 그의 훌쭉한 키는 할 일 없는 서수남과 하청일 어였다.                  지금은 군대에서도 대학 안 나온 사람 없지만 그때만 해도 그와 나는 고학력 이고 그와 나는 운명의 공동체였었다.          

그는 나와는 한 몸처럼  점호도 같아 받았고, 사역병도 같이 나 같고, 기압도 같이 받았다. 기동 훈련할 때는 한 침낭에서 잤으며 행군할 때도 의지 해가며 그와 함께 했다. 그런 그가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운 좋게 내가 병장이었을 때 그는 상병이었으며, 병장인 내가 상병을  집합시켰을 때 그도 뻘쭉하게 상병들 틈에 끼어 있었던 것 뿐이었다.

 

 

그런 s와 두 번째 만난 것은 대천해수욕장에서였었다. 어떻게 연락되고 어떻게 의기투합되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우리는 잡다한 해수욕 용품을 팔고 있었으며,  해수욕 시즌의 불야성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위락시설이 별로 없고 동해로 빠져나갈 교통편이 좋지 않아  서울의 피서객들을 짐짝처럼 쏫아부으니 사람에 사람이 치일 정도로 인파가 밀려들어왔었다.  s와 나는 장사는 뒷전이고 흥정이는 분위기에서 해수욕 시즌을 보냈었다.\

 그와의 세 번째는 만날뻔했었던 일이 있었다.  부동산 문제로 한참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흥분해 들떠서 다급히 콜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s였다.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반가워 죽겠다며 빨리 만나고 싶다고 난리 부르스였다. 

 

 

그는  부동산 관련 회사에 다닌다고 했으며,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나가지 않았고 그는 몹시 서운 하다는 전화를 가 왔으며, 세 번째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반가워하는 그의 진심만을 알고 있다.                          그와 만나서 일이 꼬였을지, 아니면 대박이 나서 팔자가 펴져 있으리 모르지만                                                                           " 나도 반갑고, 만나고 싶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인연을 접은 것이 몹시 아쉽다. 내 잘못이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나는 것이 일상이라면 그 와의 내번째 만남을 기다려 본다.                      어떻게 변 하였을까. 아픈 데는 없는가. 삽교천 이곳에서 바다를 보면서, 나를 기다리다 분노의 저주를 했을 s에게 변명을 하고 싶다             

나도 보고 싶었노라.

잔잔한 바다에 무심히 떼있는 배들을 보며 많은 세월이 흘렸구나. 그때의 서운함을 이제는 잊어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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